
버스 터미널 대합실 의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과거의 유물 MP3. 그 구닥다리 물건 이제 누가 쓰냐며, 아마 그 누군가도 버리고 간 것일 것이라 말하는 여자. 하지만 기어코 그 고장난 MP3를 수리해 그 누군가가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잘 보관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남자. 어느새 찾아온 겨울 앞에서, 그렇게 오래된 MP3로 인해 평소 한 직장 내에서 얼굴만 보던 사이였던 남자와 여자는 조금씩 말을 섞게 된다.
<창밖은 겨울>은 창원에서 시내 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남자와 버스 터미널 매표 창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 남자와 여자가 만나다. 이것은 멜로 드라마인가?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꾸 과거에 붙잡혀 사는 남자는 떠나보낸 옛 연인을 그리워하고, 또 짐짓 과거를 쿨하게 두고 온 듯 보이는 여자는 현재 자신에게 구애하는 또다른 인연을 한사코 거부한다. 이런 순간들까지 총합한다면 영화는 영락없이 멜로 드라마의 구성을 띄고 있지.
하지만 영화는 자꾸 곁가지로 샌다. 한국에서 제작된 소규모 독립 영화 특유의 분위기로 자꾸 나아가려 하는데,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과거의 사랑을 은유 한다든가, 복식으로 참여한 탁구 대회를 핑계로 둘 사이의 현재 호흡을 보여주려 한다든가. 그런데 여기에 또 자꾸만 한국에서 제작된 소규모 독립 영화 특유의 세부 요소들까지도 끼어든다. 마치 산신령 따위의 동네 수호신 마냥 묘사되는 간판 없는 가게의 이름 모를 주인장. 그리고 답답하리만치 딱 하나 밖에 모르는 남자 주인공. 게다가 그 남자 주인공은 과거에 영화인이었어. 독립 영화 만들다가 현실과 타협해 현재는 버스 기사로 일을 하고 있는 상황. 이러니까 결국엔, 이 남자 주인공이 감독 또는 작가의 과몰입이 반영되어 있는 인물로 밖에 느껴지지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거 너무 많이 봤어. 조금 과하게 말하면, 솔직히 지겹다. 독립 영화 속 영화인들의 꿈과 사랑. 물론 당연히 영화인들에 대한 영화 역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유독 한국 독립 영화계에선 좀 심해. 만든 이들의 자의식이 듬뿍 투영되다보니 공감가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 조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몽땅 기시감이다. 게다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묵묵히 자기 길만 걷다 다른 여자의 호감을 사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심지어 그 자신은 상대의 호감을 산지도 모르고 있다니. 그러면서 한사코 바보 같은 짓들만 하고 있다니. 이건 그냥 판타지잖아.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고, 사실 연출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대규모 예산으로 만든 블록버스터가 아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맘껏할 수 있어 그 개성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저예산의 독립 영화에서 지겹다는 생각이 드는 건 많이 잘못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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