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가 배척 당하던 시대, 조선 근대화의 길을 열어젖혔던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했을 때, 아무래도 나는 마틴 스콜세지의 <사일런스>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 이 영화 역시 고행의 길이겠구나. 근데 막상 본 영화는 조금 다른 포인트로 고행의 길을 걷는 영화였다. <사일런스>처럼 가장 어두웠던 시대, 믿음이란 무엇인가 묻는 영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탄생>은 김대건 신부의 전기 영화로써 그 생애를 묘사하는 데에 더 시간을 쓴다.
그리고 문제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실존 했던 역사 속 한 인물의 생애를 그리는 전기 영화, 좋지.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전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 가장 먼저 결정해야할 일은 다루고 있는 그 실존 인물의 생애 속 어느 부분을 깊게 다룰 것인지 확정하는 일이다. 물론 두세시간 동안 그 인물의 전체 생애 모두를 그릴 수도 있겠지. 다만 그렇게 할 거면 어느 부분을 요약하고 또 어느 부분을 자세히 다룰지 결정 해야겠지만.
<탄생>이 묘사하는 김대건 신부의 삶은 대략 5~6년 정도인 것 같다. 향년 25세로 순교한 인물이었고, 또 영화는 그가 성인이 되기 이전 시절부터 다루고 있으니 정말 대략 그쯤 되겠지. 전기 영화로써 5~6년 정도면 충분히 잘 다룰 수 있는 시간대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탄생>은 종종 삐걱거린다. 왔다 갔다 김대건 신부의 실제 동선을 따라 묘사하긴 해야겠는데, 또 그것만 다루고 있다보니 그가 겪었던 각 모험들의 무게감이 좀 빠지는 느낌. 예를 들어 김대건이 무인지대 120리 길을 혼자 걸어 조선 땅에 들어갔다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그 길을 오가는 모습 자체는 순교길답게 고행처럼 그려지지만 영화 전체로 봤을 땐 정작 그 곳에 왜 다녀왔고 또 가서 뭘한 건지는 빠져있다. 엥? 분명 방금 만주에서 객잔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했는데 화면 바뀌니 어느새 다시 만주로 돌아와 그 객잔 주인의 환영을 받고 있네? 뭐야, 그럼 그새 조선 다녀온 거야?
김대건이 겪었던 각 모험들만이 발췌되어 서로 연결된 느낌. 그러다보니 한 편의 영화로써는 좀 종잡을 수가 없는 모양새다. 게다가 미사를 진행하는 장면 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식 신부 서품을 받은 이후 김대건은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종교 활동 보다 그 종교를 널리 퍼뜨리고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행했던 모험들로 삶 후반부를 채워나간다. 이게 종교와 그 믿음에 대한 영화인 줄 알고 보기 시작했던 건데, 막상 보니 그냥 모험물에 더 가까웠던 인상. 물론 모험 자체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영화가 좀 뭉텅뭉텅이다. 차라리 김대건의 유년시절부터 그렸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든다. 유교와 성리학이 오랫동안 지배했던 땅에서, 인간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다 말하는 종교의 귓속말은 말그대로 천지개벽이 아니었겠나. 게다가 김대건은 또 굳이 따지면 양반 집안의 자제였잖아. 그러니까 그 종교를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잠깐이나마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은 거. 집안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었다고 하니 그 부모 세대 이야기를 잠깐 했어도 좋았을 것 같고. 지금 버전도 오프닝 자막으로 그걸 대충 대충 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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