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7 17:01

몸값 SE01 연속극


나홍진의 <완벽한 도미요리>와 장재현의 <12번째 보조사제>. 그리고 이충현의 <몸값>. 이 세편의 단편 영화는 연출한 해당 감독들을 이른바 한국 상업 영화 씬으로 직행하게 만들어준 작품들이다. 물론 이외에도 비슷하게 놓을 만한 작품들은 더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이 세편이 가장 유명한 편이라 할 수 있을 것. 특히 이충현의 <몸값>은 단편 영화라는 포맷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그 어떤 곳까지 관객들을 데려가버리는 강렬한 작품이었기에 만들어진 후에도 오래도록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유명한 동명의 단편 영화를 베이스로 삼아 6부작으로 완성해낸 티빙의 드라마, <몸값>. 이 <몸값>은 그 <몸값>에 비해 한 술 더 뜬다. 바로 그 점에서, <몸값>과 <몸값>은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한 남자가 여고생과 성매매를 하기 위해 시골에 있는 허름한 모텔을 찾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위 몸값 흥정. 지난하고 찌질한 흥정이 마무리 되자 남자는 거사를 치르기 전 몸단장을 위해 샤워실로 들어가는데, 이 때 여고생은 밥상 다 차려놓았다는 식으로 모텔 직원들을 부른다. 건장한 남정네들과 물 건너 온 야매 의사들에 의해 샤워하다 말고 결박되는 남자. 파리를 기다리던 파리지옥 마냥, 먹잇감이 들어오자마자 냅다 그 주둥이를 닫아버리는 모텔. 그렇다, 이 모텔은 일종의 장기매매 사업소였던 것이다. 붙잡힌 남자는 모여든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장기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다시 시작되는 몸값 흥정. 다만, 이번엔 한 번의 섹스가 아니라 한 개씩의 장기가 그 대상이다. 

티빙의 <몸값>은 여기까진 동명의 단편과 동일한 길을 걷는다. 하지만 첫번째 경매가 막 마무리 되려는 와중, 예상치도 못하게 쏟아져들어오는 승부수. 지진이 난 것이다. 그냥 지진도 아니고 정말 큰 지진. 이에 시골 산비탈에 지어진 모텔은 와르르 맨션 신세가 되고, 이 기회를 틈타 어쩌다 풀려난 남자는 이 지옥도 같은 곳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친다. 여기에 합세하는 악랄한 생존 본능으로 가득찬 여고생과, 방금 전의 경매로 남자의 콩팥을 사게 된 웬 효자가 합류. 과연 이 셋은 이 위아래로 펼쳐진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티빙의 <몸값>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기세다. 대표적인 일례가 원 컨티뉴어스 샷으로 매 에피소드가 구성되어 있다는 점일 것. 샘 멘데즈의 <1917>이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이 그랬던 것처럼, <몸값>은 각 에피소드가 설정상 단 하나의 쇼트로만 구성되어 있다. 한 번 더 말해 처음부터 끝까지 롱테이크라는 것.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같은 영화의 기술적 설정이 그닥 좋게 보이지 만은 않았다. 효과적으로 쓴다면야 당연히 좋겠지만, 아무리봐도 이 이야기에 그런 테크닉이 필요해보이지는 않았거든. 그래서 회의적이었는데, 드라마를 다 보고나니 결과적으론 원 컨티뉴어스 샷이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기세등등하게 직선주로로 달려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 생각을 바꿔먹었다. 드라마가 중간중간에 어색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프로덕션 디자인도 작위적으로 보이고, 인물들의 동선이나 이야기의 전체 설정이 스텝 꼬인 왈츠 마냥 비틀댈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조금의 약점들을, 드라마는 롱테이크 등을 활용해 특유의 기세로 우다다다 달려 나가며 숨겨낸다. 분명 단점도 많은 드라마인데 그냥 그 기세로 승부 봐 버린 드라마랄까. 

그렇게 전반적으로 기세 높이며 달려나가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타부타 하기도 전에 이야기가 벌써 저만큼 나아가 버린다. 그러다보니 계속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OTT 플랫폼을 근거지로 삼은 드라마로써는 훌륭한 장점이다. 1화 끝나면 바로 2화 보고 싶고, 또 2화 끝나면 바로 3화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장점이지. 다만 그렇게 6화까지 다 보고난 이후 훅 치고 들어온 세계 멸망급 설정은 조금 당황스럽더라. 시즌 2에서 나름대로 설명하겠지만, 이럴 거면 리메이크의 의미가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기세등등하게 달려나가더니 너무 멀리까지 가버리는 느낌이라. 

전종서도 좋고, 장률도 좋다. 근데 진선규가 제일 좋다.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저 섹스가 하고 싶을 뿐이었지 않나. 물론 성매매하는 거 나쁜 일이지. 허나 드라마 중반쯤부터는 그가 제일 불쌍했고, 또 그가 제일 믿음직했다. 성매수자가 그나마 제일 정상적인 세계관이라니. 그런데 그런 거 다 떠나서 팬티만 입은 남자 이렇게 오래 본 것도 거의 처음 아닌가 싶다. 이야기 외적으로도 촬영하면서 진선규 많이 고생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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