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2 12:40

영웅 극장전 (신작)


원작이 되는 뮤지컬 공연은 보지 못했다. 다만 꼭 원작 공연을 보아야만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 생각된다. 이미 <레 미제라블>과 <맘마미아!>, <캣츠> 등을 원작 공연 보지 않은채 관람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웅> 역시 마찬가지로 그 세 작품들과 단점의 궤가 같다. 종합적으로 요약하자면, '영화적 요소'의 부재라 할 수 있을 것.

영화외 세상의 모든 콘텐츠들을 굳이 영화라는 형식으로 리메이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리메이크하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좋은 소설이 있다고 해서 그걸 꼭 영화로, 재밌는 비디오 게임이 있다고 해서 또 그걸 꼭 영화로 제작하라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건 아니지않나.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고로 무언가를 영화로 리메이크 하려면, 최소한의 노력을 하라고. 원작의 포맷과 영화의 그것 사이 차이를 잘 이해하고 연구하여, 원작에서는 해내지 못했던 무언가 플러스 알파 이상을 해보라고. 그런데 톰 후퍼의 <레 미제라블>과 <캣츠>, 그리고 필리다 로이드의 <맘마미아!> 연작은 그걸 안 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레 미제라블>은 나은 편이지, <캣츠>를 보라고. 저걸 대체 왜 굳이 영화라는 형식으로 재탄생 시켰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바로 그 점에서 <영웅>도 나에겐 비슷한 감상을 쥐어줬다. 

무조건적으로 모조리 다 싫다는 게 아니다. 인기 뮤지컬을 리메이크한 영화답게, <영웅>의 뮤지컬 넘버 대부분은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나로서도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며 뮤지컬 넘버들을 흥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찾아 듣기까지 했다. 뮤지컬 넘버가 훌륭한 뮤지컬 영화. 이는 대단히 당연한 장르적 숙제지만 한편으로는 그 당연한 숙제를 안 한 작품들이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았기에, 칭찬하지 않을래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록 그것이 원작에 있는 노래들을 홀랑 다 가져온 것 뿐이지 않냐며 설사 누가 비판해도, 그것이 리메이크의 권리 아니겠는가-라 대신 변호해줄 수 있는 것이다. 하여튼 <영웅>의 뮤지컬 넘버는 충분히 인상적인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배우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물론 영화 속 모든 배우들이 다 좋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주연을 맡은 안중근 역할의 정성화는 흡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건 듯한 태도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했을지는 모를 일이나, 적어도 관객들은 그렇게 느끼게 된다. 그의 열정과 혼신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의 성량과 가창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특유의 잔잔한 코미디 감각도 인상적이다. 다른 배우들의 아쉬운 부분들마저 주연 배우가 홀로 다 방어해내는, 그야말로 이야기 밖에서나 안에서나 썩 안중근스러운 면모를 정성화는 선보여낸다. 

문제는 감독의 연출이다. 흡사 모든 걸 다 건 듯 연기하는 주연 배우가 있는데, 왠지 감독은 뒷짐만 지고 서 있는 듯한 인상이다. 무대 위의 뮤지컬을 프레임 안의 영화로 옮겨 오며 대체 고민을 하기는 했던 걸까- 싶어질 정도로 영화의 연출이 평범하다 못해 안이하다. 물론 무대 뮤지컬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영상 매체로 옮겨올 적엔 과거 회상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기에 더 유리한 것 아닌가? 하지만 영화는 그를 정말로 안일하게 써먹는다. 김고은이 연기한 설희가 종종 과거 회상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이 부분의 연출은 가히 게으르다 말할 수 있을 정도. 

뮤지컬 장르 영화로써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뮤지컬 넘버 장면도 너무나 아쉽다. 아까 말했듯 노래는 다 좋지. 그런데 뮤지컬 장르 영화라는 게, 영화의 모든 장르들을 통틀어 가장 형식적인 장르라 할 수 있지 않나. 이야기가 진행되다 인물이 갑자기 노래로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표현한다고? 전혀 현실적인 장르가 아닌 거잖아. 그렇다면 그 뮤지컬 넘버를 극중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그 시작점이 뮤지컬 장르 영화로써는 굉장히 중요해진다. 헌데 <영웅>은 그 타이밍들이 너무 어설픈데다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제 노래할 타이밍이니 노래하겠다 노골적으로 노래 부르는 느낌. 노래방에서 서비스 추가 시간 거의 다 끝날 타이밍에 재빨리 새로운 노래 시작하는 거랑 비슷하다. 등 떠밀려서 노래 시작하는 것 같다. 

분위기가 일관되지 않은 것도 조금 우습다. 영화의 첫 쇼트, 그러니까 안중근이 홀로 드넓은 눈밭을 걸어 나가는 모습을 저멀리 하늘에서부터 담은 쇼트. 나는 그 쇼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원작 뮤지컬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영화가 굉장히 진지하겠구나'라며 기대했던 거지. 그런데 영화는 연말용 대중 영화로써의 소임을 다 해야한다 생각했던 것인지, 갑작스러운 만두 타령 노래와 어울리지 않는 활극적 요소로 갑자기 분위기를 마구 쇄신한다. 물론 그 만두 타령 역시 원작 뮤지컬에 있던 것이겠지. 그런데 그걸 그대로 쓸 것이었다면 최소한 영화의 분위기와 리듬에 맞게는 조율 했어야지 않나. 사실 뮤지컬 넘버 장면으로써도 그 노래가 가장 연출적으로 최악인데. 

충분히 관객들을, 특히나 한국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엔 더없이 적절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듯, 뮤지컬 넘버들도 썩 훌륭하고. 하지만 배우가 힘써 연기한 것에 비해 감독은 태업을 한 듯 하다. 그렇다고 마냥 윤제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극장에서 개봉 당일 <국제시장>을 보며 일정 부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거든, 그의 영화 흥행사적 능력을. 허나 이번 영화 <영웅>은 무척이나 실망스럽다. 상당히 좋은 여건을 갖고 시작했던 영화라는 점에 있어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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