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6 17:45

피노키오 극장전 (신작)


2022년 한해에 걸쳐,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 소년의 이야기가 두 편이나 공개 되다니. 그것도 두 편 모두 OTT 플랫폼 전용 작품으로 말이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심지어는 그런 몇가지 사소한 공통점들만 제외한다면, 두 편 사이엔 차이점이 훨씬 많이 존재한단 사실이 그들의 관계를 더 운명적인 대결로써 보이게 만든다. 전연령대를 위한 디즈니의 <피노키오>와 비교적 성숙한 관객들을 목표로 한 넷플릭스의 <피노키오>. 원작 동화의 실사 영화적 재현인 <피노키오>와 원작 동화의 역사적이면서도 인간론적인 재현이 된 <피노키오>. 두 편 모두 할리우드의 걸출한 감독들이 연출해냈지만, 이번만큼은 로버트 저멕키스 보다 길예르모 델토로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실사 영화적 리메이크였던 디즈니의 <피노키오>와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래도 이 작품이 원작 동화의 역사적 '번안'이라는 데에 있다. <판의 미로>에서 그랬듯, 길예르모 델토로는 이번에도 동화적 모티프를 주춧돌 삼아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본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이탈리아. 파시즘이 지배를 하고, 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공포가 만연 하며, 때문에 어린이들은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시대와 장소.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파시스트와 위선적 종교인, 정부의 나팔수 등, 어린 아이라면 차마 이해하지 못할 악독한 어른들의 세계를 여행한다.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나무 소년'이란 동화적 판타지는 신기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제발 있어줬음직한, 살아남았음직한 소망이자 희망으로 바뀌어 나간다. 

원작 동화와 최근 디즈니의 실사 영화가 그랬듯, 델토로의 <피노키오> 역시 다소 진부하다면 진부하다 할 수 있을 교과서적 결말로 문을 닫는다. 피노키오의 거짓말보다 훨씬 더 거짓말 같은 우리네 현실 속에서,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노라고. 웃긴 건, 정말이지 뻔하기 짝이 없는 동화적 결말이고 그만큼 우리가 살면서 많이 봐왔던 메시지임에도 결국엔 거기에 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피노키오가 버텨내고 거스른 이 거대한 어른들의 역사가 너무나도 참혹 했기에, 그리고 진짜 소년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무 소년으로 남아주었기에 <피노키오>의 결말은 동명의 다른 이야기들 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감정을 자아낸다. 몇 번의 죽음을 경험한 피노키오가 자신의 마지막 삶까지 다 써내며 아버지를 구해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교과서적인 결말이래도 과연, 영화는 델토로만의 색깔을 분명히 한다. 기쁜 마음으로 피노키오를 만들었던 디즈니의 제페토와는 달리, 넷플릭스의 제페토는 술에 취한 상태로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라도 만드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내며 나무 소년을 제조 해낸다.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델토로만큼이나 아버지와 자식 관계의 테마를 얕게라도 꾸준히 다뤄온 감독이 은근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는 <헬보이> 연작을 통해 출신지는 험악하지만 아빠 앞에서는 결국 어린 아이일 수 밖에 없었던 아들을, <블레이드2>에서는 서로를 잡아 먹으려는 아버지와 아들을, <판의 미로>를 통해선 억압받는 딸과 그녀의 폭군 아비를 다뤄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롭게 당도한 피노키오와 제페토. 그 둘의 관계는 여태껏 델토로가 다뤄왔던 그 어떤 부자 관계보다도 더 따뜻하다.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관람하면 사뭇 느낌이 다를 것만 같은 영화. 다른 건 몰라도, 극중 귀뚜라미의 대사 한 줄이 마음에 콱 박혔다. "화날 때 하는 말은 처음엔 진심 같지만, 나중에 깨닫게 돼.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잔혹한 어른들을 진심으로 대했던 소년. 끝내는 스스로의 진심으로 한 어른을 구해낸 소년의 이야기. 올해의 <피노키오> 대전은 델토로의 압승으로 기억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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