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1 16:36

미래전투 극장전 (신작)


사실 중화권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대한 기대감이, 특히 한국에선 더더욱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자국내 빡빡한 검열 과정을 거쳐 나온 영화들이다보니, 사상과 이념이 다른 대한민국에서는 그 특유의 무조건적인 감수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10여년 전쯤부터 중화권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우후죽순 발견되는 국수주의적 태도가 바로 그렇다. 다만 그런 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꽤 인상적인 면면을 보여낸 <유랑지구> 같은 작품들도 더러 있긴 했지만. 

때문에 <미래전투>에 대한 초반 인상도 썩 좋지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번엔 또 얼마나 유치할까. 이번엔 또 얼마나 서투르고, 또 얼마나 베껴 만들었을까. 그런데 막상 보니 생각보다 <미래전투>의 그림은 나쁘지 않다. 특히 CG를 비롯한 그 기술력. 중국이 영화 속 CG 강국으로 향해가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할리우드의 그것을 온전하게 100% 따라갔다 말하는 건 거짓말이겠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한 수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래전투>의 CGI와 특수효과는 그럴 듯하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으로 걱정되는 것은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무언가일 것. <승리호> 때도 말했었지만, 이제 CG를 비롯한 영화적 기술력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다 뛰어난 수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의 문제는, 어떻게 그릴까가 아니라 무엇을 그릴까인 거지. 여기에서는 <미래전투>가 절반 정도는 잃고, 또 나머지 절반 정도는 얻어낸 것 같다. 등장하는 엑소 수트나 AI 전투 로봇 등의 메카닉 디자인은 다 어디서 본 것들이다. 엑소 수트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기본 골격을 따오고 그 안면부 마스크를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범블비 느낌으로 장식한 듯하고, 인간형 AI 전투 로봇들은 <채피>나 <코드 8>에서 다 봤던 것들. 그것들을 구현해낸 기술력은 멋지지만 여전히 디자인에 있어서의 독창성은 조금 결여되어 있는 모양새다. 

허나 영화가 그리는 암울한 미래 속 재난의 이유로 단순 외계인의 침공이나 AI의 반란 따위를 상정하지 않은 점은 좋다. 벌레나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이 아니라, 떨어진 운석 속 씨앗에서 자라난 외계 식물에 의해 초토화된 인류의 미래. '판도라'라는 다소 뻔한 이름이 붙은 건 귀엽다고 봐주자고, 기본 설정과 디자인이 좋으니까. 게다가 외계 식물로만 주인공들 괴롭히기 어려웠는지, 그 식물이랑 같이 딸려온 외계 기생 벌레 설정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렇게 흥미로운 외계 식물을 설정해두고도 그닥 위협적으로 그리진 못했다는 거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생각보다 놀라운 부분도 많았다. 그럴 듯한 CG 기술로 이행해낸 구현력도 눈여겨볼 만하고.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기술력으로는 평균 이상의 수준급 실력인데, 그 안에 인간의 마음을 담는 방식은 참으로 구태의연하다는 문제. 근본적으로 이건 영화가 아닌가. 비디오 게임의 시네마틱 트레일러였다거나 뮤직비디오였으면 상대적으로 비주얼이 더 중요하니 이야기야 좀 빠져도 이해 가능하지. 허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영화'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여러 인물들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납득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런데 <미래전투>는 제목도 그렇고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미래'를 지향하는 작품임에도 그 부분에서 만큼은 '과거'의 방식에 집착한다. '과거에 딸을 잃은 주인공'이란 설정 자체가 뻔한데 그걸 묘사하는 방식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낮은 채도의 과거 회상. 엄청 많이, 또 엄청 자주 그 과거 회상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냥 대사 몇 마디나 배우의 표정 하나로 그 뉘앙스를 충분히 풍길 수 있었을 텐데, 설명하는 데에는 언제나 어김없이 과거 회상만 주구장창 씀. 그래서 영화가 뭔가 90년대 작품처럼 느껴지는 부작용이.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나 액션 묘사는 꽤 괜찮다. 그러나 그 안에 인간의 마음을 담는데 있어서는 끊임없이 비틀대는 영화. 그리고 이게 현재 중화권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대표 표본이란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기술력은 시간에 달려있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그 안에 인력을 갈아넣는 방식으로 어찌되었든 끌어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조건적인 창의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 창의력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변화무쌍한 사고로 인해 튀어나오는 거고. 어쩌면, 그게 현재 중화권 영화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가 아닐까. 


뱀발 - 장가휘가 연기한 소령이 존나 웃긴다. 등장할 때마다 심각한 표정 짓고 있는 게 뻘하게 웃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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