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벤져스 팀업 무비가 없어서 그랬을까, 기존 인피니티 사가 내의 다른 페이즈들과는 다르게 페이즈 4는 유야무야 끝났단 인상이 아무래도 강했다. 때문에 이번 영화가 페이즈 5의 포문을 여는 첫 영화란 사실도 불과 얼마 전에야 알았음. 어쨌거나 한 페이즈의 시작을 알리고, 덩달아 포스트 타노스가 되어줄 정복자 캉이란 걸출한 수퍼 빌런까지 소개해야하는 상황.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가 가졌던 부담감이란 꽤 무거웠을 것이다.
일단, <앤트맨> 시리즈의 3편으로써 평가를 먼저 해야한다. <퀀텀매니아>는 앞선 두 편과 그 궤를 달리한다. 비교적 현실 세계에 가깝던 기존 시리즈의 공간적 배경에서 <퀀텀매니아>는 양자 영역으로의 도약을 시도한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부터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불거졌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앤트맨> 시리즈는 마블 영화의 쉼표였고, 의외로 박력있는 액션과 유쾌한 코미디가 항상 함께 붙은 액션 코미디물이었다. 그런데 <퀀텀매니아>는 그 이야기를 양자 영역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기존 시리즈가 갖고 있던 유쾌한 톤을 증발 시켜버린다.
한마디로 말이 양자 영역이지, 그냥 마블판 <스타워즈>다. 물론 <스타워즈>가 위대한 작품이었다는 것을 안다. 내가 그 영화의 팬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할리우드 상업 오락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였던 것은 맞으니까.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감독들도 그에 대한 존경이 강하고. 그 때문에 감독인 페이튼 리드가 대충 무엇을 의도 했는지는 알 것 같다. 각종 실물 분장과 최신식 CGI 등을 섞어 <스타워즈>를 향한 존경심을 표출해보겠다는 포부.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다. 비록 <스타워즈>가 위대한 영화이기는 하나, 그게 어느덧 거의 50여년 전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 반 세기 동안, 이미 <스타워즈>에 열렬한 오마주를 보내는 영화들이 존재했다. 오마주는 물론이고 거기엔 패러디와 심지어는 표절, 노골적인 우라까이까지 다 있었다. 고로 <퀀텀매니아>가 보여주는 <스타워즈>식 스탠드는 2023년에 개봉되는 영화로써 지나치게 뻔해 보인다.
위험한 발언이기는 하나, 때때로 할리우드는 파시즘과 파시스트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또 미워하는 듯 하다. 다스 시디어스 황제와 다스 베이더가 이끄는 제국군, 그리고 그에 맞서는 반란군 이야기가 다시 말하지만 벌써 50여년 전 이야기다. <퀀텀매니아>가 골라잡은 것은 이번에도 정복자 캉으로 표현되는 파시즘이고, 또 그에 맞서는 혁명군 이야기다. 하얀색의 스톰 트루퍼들은 모두 헬멧 전면부만 빛나는 몰개성한 병사들로, 강한 포스를 지녔던 다스 베이더는 그저 정복자 캉으로 어레인지 되었을 뿐 <퀀텀매니아>의 악역과 그 세력은 모두 평면적이고 평범하기만 하다. 그러다보니 이에 맞서는 혁명군들조차 재미없어 보이는 건 매한가지고.
영화 전체가 한없이 <스타워즈>에 충성 맹세만 하고 있다 보니, 가볍게 날아다니던 앤트맨식 유머는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주인공으로서 스캇 랭의 매력은 이전 작들에 비해 반감될 수 밖에 없고. 그렇담 정복자 캉은? 사실 이 영화가 더 기대되었던 측면은 바로 그 때문 아니었던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복자 캉은 타노스의 자리를 물려받을만한 한 사가의 수퍼 빌런으로서 제대로된 신고식을 치르지 못한다. 과거 양자 영역에 갇혀있던 재닛이 캉의 과거를 목격했다고? 하지만 재닛이 봤다는 그 캉의 과거는 영화에 단 몇 초만 등장할 뿐. 말로는 우주 최강이라 말하는데 그게 잘 체감이 안 되는 것이다. 이후 현재 시점에서 벌이는 캉의 액션도 압도적이지 않은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막스라고 할 만한 앤트맨 VS 캉 마지막 대결에서는 둘 다 각자의 능력은 아예 쓰지도 않고 그냥 맨주먹질만 하고 있더라.
그 마지막 대결에서 캉이 "넌 절대 이길 수 없어!"라며 도발하자, 앤트맨이 말한다. "내가 이길 필요 없어. 우리 둘 다 지면 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인공의 말이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던 건지, <퀀텀매니아>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소화 해낸다. 이 영화가 해냈어야 했던 건 딱 그 두가지였잖아. 우리가 사랑해왔던 앤트맨을 잘 묘사하는 것과, 우리가 새롭게 소개받을 캉을 잘 묘사하는 것. 그렇게 딱 두가지. 그런데 <퀀텀매니아>는 그 둘 모두에서 지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2편격이었던 <앤트맨과 와스프>도 그리 재미있게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3편마저 실망스러운 건 그렇다 칠 수 있다. 허나 앞으로의 페이즈를 모두 이끌어 나아가야하는 정복자 캉이 그렇게 허접하게 소개된 건 두고두고 아쉬울 수 밖에 없을 듯.
뱀발 - 캐시 랭의 캐스팅이 바뀌었다. 물론 새롭게 바뀐 캐서린 뉴튼도 매력있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속 캐시와 얼굴이 너무 달라져버려 몰입이 좀 깨지는 느낌. 하긴, 그 영화에서도 캐시가 나온 거 딱 세 쇼트 뿐이긴 하더라.
덧글
잠본이 2023/02/28 15:38 # 답글
캉은 뭐... 어차피 멀티버스에 그득그득한 버전들을 앞으로 더 써먹을듯하니 이번 녀석은 그냥 베타버전이라고 생각하고 잊는 편이(라고 하기엔 다른 놈들이 얘를 못이겨서 유배보냈다는게 말이 안되는데?)